가짜 치아 끼고 "양배추"…英여왕 74년 웃게한 필립공의 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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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에 큰 구멍(huge void)이 생겼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남편 필립 공의 별세에 대해 밝힌 심정이다. 11일(현지시간) 영국 BBC·가디언 등은 여왕 부부의 차남 앤드루 왕자가 예배에 참석한 뒤 "어머니는 어떤 심정이신가"라고 묻는 취재진에게 이렇게 전했다고 보도했다. 13살 영국 공주와 18살 해군 생도로 처음 만나 세기의 로맨스 주인공으로 살았던 두 사람의 80여 년의 연이 다한 것이다. 앤드루 왕자는 “상심이 큰 여왕을 위해 가족들이 모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버지 조지 6세와 해군사관학교를 시찰하러 갔던 엘리자베스 여왕은 필립 공을 보고 첫눈에 반했다. 이후 두 사람은 7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키웠고 결혼에도 성공했다. 74년간 부부로 살며 슬하에 4명의 자녀와 8명의 손주, 10명의 증손주를 뒀지만, 특별한 지위만큼 결혼 생활이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외신들은 그럼에도 두 사람이 가정과 국가를 함께 지킬 수 있던 비결로 필립 공의 희생과 외조, 유머라고 조명했다.
국적·성·종교 버려야 했던 국서(國壻)의 희생
1947년 11월 20일, 두 사람은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전 세계는 쇠락한 왕실의 왕자와 왕위 서열 1위 공주의 결혼에 주목했다. 필립 공도 그리스·덴마크 왕자였던 안드레아스와 바텐베르크 가문의 앨리스 사이에서 태어난 왕실 출신이었다. 하지만 그리스가 터키와의 전쟁에서 패하면서 그의 일가는 그리스 땅에서 쫓겨났다. 영국의 국서(國壻)가 된 뒤 필립 공이 제일 먼저 포기해야 했던 것은 국적과 왕위 계승권이었다. 그는 결혼을 결심한 뒤 영국인으로 귀화했고, 성(姓)도 바텐베르크에서 마운트배튼으로 바꿨다. 종교 역시 그리스 정교회에서 성공회로 개종했다.
“여왕이 하는 대로 하라 (Do as the queen does)”는 왕실의 규칙을 그는 착실하게 지켰다. 52년, 엘리자베스 여왕은 조지 6세가 갑자기 숨지면서 26세에 왕위에 올랐다. 당시 대관식에서 필립 공은 여왕에게 무릎을 꿇고 영원한 충성을 맹세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그는 97년 두 사람의 결혼 50주년 기념식에서 “내가 할 일은 첫째도, 둘째도, 마지막도 여왕을 실망하게 하지 않는 것이었다”고 회고했다.
‘현실감’ 바탕으로 한 외조
몰락한 왕실 출신이었던 필립 공은 왕실이 국민에게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직설적인 조언은 엘리자베스 여왕의 통치에 큰 힘이 됐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필립 공이 미친 영향을 언급하며 “오랫동안 나와 가족, 국가와 다른 나라들은 그가 아니었다면 알지 못했을 큰 빚을 졌다”고 말한 바 있다.
가장 유명한 일화는 엘리자베스의 대관식을 TV로 생중계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50년대 초 당시 영국은 2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에 빠져있었다. 정치적으로는 군주제에 대한 회의론이 대두했고, 민심은 혼란에 빠졌다. 필립 공은 국민에게 기대감과 자부심을 심어줄 방법으로 생중계를 떠올렸다. 영국 역사상 최초로 국민과 함께한 대관식이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필립은 솔직담백했고, 이 때문에 나는 연설까지 사전에 논의하는 등 그로부터 큰 힘을 받았다”고 말했다.
긴장을 풀게 해준 ‘유머’
두 사람은 생전 유머코드가 잘 맞았다고 한다. 영국 더 선에 따르면, 필립 공은 생전 가짜 치아를 끼는 등 장난을 자주 쳤다. 그때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웃으며 궁전 복도를 뛰어가기도 했다고 한다. 57년 여왕이 첫 크리스마스 메시지를 공표하기 위해 카메라 앞에 섰을 때, 필립 공은 “울고 있는 치아를 떠올리라”는 농담을 해 그의 긴장을 풀어주기도 했다.
필립 공은 이외에도 엘리자베스 여왕이 스트레스에 시달릴 때마다 ‘양배추’라는 애칭을 불러줬다고 한다. 평생 그 때문에 웃는 일이 많았다는 엘리자베스는 지난 2017년 남편의 은퇴를 언급하며 “특별한 유머 감각을 지니고 나를 지지해줬다”고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